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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문헌 목록 〉17. 17世 〉14. <부정공>성균생원공휘숭하가장(成均生員公諱崇夏家狀)
1. 문헌 목록 〉17. 17世 〉16. <부정공>쇄연당처사공휘기하가장(灑然堂處士公諱器夏家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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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부정공>처사휘성하묘지명(處士諱成夏墓誌銘)
處士諱成夏墓誌銘 有明朝鮮國湖南南昇平府有漕溪山山之陽新興里後麓直艮而封四尺者我五代祖衣履遷奉之藏祔左而同穴者配文化柳氏弼茂女也府君諱成夏字子遂性氣淸眞脫俗而出鹿一以奉先裕後爲事生平不經痘疹閭里時有痘疹則往寓山寺看書度日恬靜自適不求人知固窮行義處家有法而未得展布嗚呼惜哉我趙氏上祖諱璋爲高麗侍中始籍淳昌累傳至諱元吉與鄭圃隱諸賢定策立動封玉川府院君諱瑜官副正當麗季國初入杜門洞罔僕守節爲奕世名族不須譜也高祖諱時聖以孝蒙旌曾祖諱維綱祖諱之賓有行誼考諱台望妣晋州鄭氏道一女仁惠貞淑甚備婦德府君生于 肅宗戊子十二月三十日卒于丁未三月二十四日享年八十擧二男長元淳次昌淳有二子一女曰仁根出系長房曰一根興德張東翼女壻也長房男仁根有子諱得燁忠孝耕讀遺爲家訓享年八十三當 太上皇己丑之冬適因朝家望九之慶由道臣狀薦蒙優老恩典階通政大夫副護軍次房男一根有三男一女曰文燁有孝行曰冑燁曰禹燁曰河東鄭仲元子若壻也曾玄以下不盡錄嗚呼懷寶守拙不見知於人而惟有天翁知者從古多矣則奚獨爲府君致私憾哉主鬯孫鍾悳屈首儒門學業未成而不幸遭桑海之變改慨然有志於繼述先蹟然事行無所考據故敢以是寂寥數語用表幽宅之前願垂留有餘不盡者于千萬歲無窮之日焉遂爲銘曰漕溪名山欝彼佳城彼安此安一理孔明奉先裕後永世作程戒爾樵牧勿及犂耕 五代孫 鍾悳 謹識 처사휘성하묘지명(處士諱成夏墓誌銘) 유명한 조선국 호남 승평부에 조계산(漕溪山)이 있는데 산 남쪽 신흥리(新興里) 뒷산 기슭 간좌에 있는 무덤은 우리 五대 조고의 유택이요 같은곳 좌측에 부장한 묘는 배 문화유씨(文化柳氏) 필무(弼茂)의 따님이다. 부군의 휘는 성하요 자는 자수(子遂)인데 성품과 기질이 맑고 순박하여 속세를 벗어나 청정(清淨)하며 한결같이 선영을 받들고 후손을 유복하게 하는 것을 힘썼으며 평생 손님(痘疹)에 걸리지 아니하였다. 마을에 전염병이 돌면 절로 피하여 독서로서 소일을 하며 안정하여 스스로 편안히 하고 사람이 알기를 원하지 아니하였으며 굳게 행의를 지키고 가법(家法)이 있었는데 포부를 다 펴지 못하였으니 애석한 일이다. 우리 조씨의 상조 휘 장(璋)은 고려 때 시중(侍中)으로 비로소 순창(淳昌)으로 본관을 하였고 여러 번 전하여, 휘 원길(元吉)에 이르러 포은(圃隱) 정몽주(鄭夢周)선생으로 더불어 계책을 정하여 훈공을 세워 옥천부원군에 봉하여졌다. 휘 유(瑜)는 벼슬이 부정으로 여말선초(麗末鮮初)를 당하여 두문동(杜門洞)에 들어가 절개를 지켜 세상에 빛난 명족이 되었으니 더 기록할 것이 없다. 고조 휘 시성(時聖)은 효행으로 정포되었으며, 증조의 휘는 유강(維綱), 조의 휘는 지빈(之賓)으로 행의가 있고, 고의 휘는 태망(台望)이요, 비(妣)는 진주정씨(晋州鄭氏) 도일(道一)의 따님으로 인자하고 정숙하여 부덕이 매우 갖추어졌다. 부군은 숙종(肅宗) 무자(戊子)년 (一七○八) 十二월 三十일에 출생하여 정미(丁未)년(一七八七) 三월 二十四일 향년 八十세로 별세하였다. 아들은 원순(元淳)·창순(昌淳)으로 창순은 二남 一녀를 두었는데 인근(仁根)은 장방으로 출계하고 일근(一根)이며, 흥덕(興德) 장동익(張東翼)이 그의 사위이다. 장방 아들 인근(仁根)의 아들 득엽(得燁)이 충성하고 효도하며 밭 갈고 글 읽는 것으로서 가훈을 삼고 향년 八十三세에 태상황(太上皇) 기측(己丑)년 (一八八九) 겨울을 당하여 마침 나라에 九十세를 바라는 경사가 있어 도백의 천거에 따라 노인을 우대하는 은전을 입어 통정대부부호군(通政大夫副護軍)의 수직을 받았다. 차방남 일근은 三남一녀를 두었는데 문엽(文燁)은 효행이 있었고 주엽(冑燁)과 우엽(禹燁)이며, 하동(河東) 정중원(鄭仲元)이 사위이다. 증손 현손이하는 다 기록하지 아니한다. 아! 보배를 품고 졸렬함을 지켜 사람이 알지 못하고 오직 하늘만이 아는 자가 옛부터 많이 있은즉 어찌 홀로 부군만이 유감이 있으리오. 증손 종덕이 선비의 문하에 들어가 글을 배웠으나 학문을 이루지 못하고 불행하게도 상전벽해의 변을 만나 분개하고 한탄하며 선세의 사적 계술에 뜻을 두었으나 사적과 행실을 고증할 바 없기 때문에 감히 이 쓸쓸한 두어 마디로써 유택에 표하오니 남은 것이 있고 다하지 못한 것을 천만세(千萬歲) 무궁한 날에 드리워 주기를 원합니다. 다음과 같이 명하노니, 조계명산에 漕溪名山 울연한 저 가성이로다. 欝彼佳城 저도 편안하고 이도 편안하니 彼安此安 한 이치가 심히 밝도다. 一理孔明 선영을 받들고 후손을 유복하게 奉先裕後 길이 장정을 만들었다. 永世作程 경계하노니 너 초동 목수들은 戒爾樵牧 행여 유린하지 말지어다. 勿及犂耕 五대손 종덕(鍾悳) 삼가 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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